*샘플이 행사 전에 공개했던 것에서 수정+추가되었습니다. 출력 전에 수정한 것으로 행사때 판매했던 책과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수정됐기 때문에 이전에 업로드했던 샘플은 내렸습니다. 참고해주세요~
이미지 샘플 ▽▽
이미지가 깨지는 분들을 위한 텍스트 샘플 ▽▽
또 그의 꿈을 꾸었다.
미도리마는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코끝에 걸치는 실내 공기가 싸늘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숨을 훅 내쉬자 실내인데도 입김이 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커튼이 반쯤 걷힌 창밖을 내다보자 뿌연 성에가 낀 창 너머로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보였다. 완연한 겨울 풍경을 잠시 바라보던 미도리마는 잠옷 자락을 정돈하고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이것으로 몇 번째 꿈이지, 하고 생각하며 미도리마가 피곤한 눈가를 꾹 눌렀다. 남아있던 잠기운이 천천히 걷혔다. 꿈이란 것은 으레 잠에서 깨고 나면 순식간에 잊히게 마련인데, 어째서인지 그의 얼굴과 표정과 목소리가 미도리마의 눈꺼풀 안쪽에 달라붙어 있는 것처럼 남아, 눈을 깜빡일 때마다 잔상처럼 떠올랐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미도리마는 눈을 감고 샤워기를 틀어 머리부터 물을 끼얹었다. 감긴 눈 너머로 그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신쨩!’
퍼부어지는 물줄기 사이로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걸렸다. 미도리마를 똑바로 바라보는 눈이 장난스럽게 휘는 모습이 미도리마의 머릿속에서 천천히 재생되었다. 몇 년째 보지 못한 얼굴이 멀찍이 서서 웃고 있었다. 꿈속의 미도리마는 어떤 낯설음도 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그에게로 걸어갔다. 그는 미도리마 옆에 나란히 서서 무어라고 말을 걸었고 미도리마는 대답을 하기도 하고 인상을 쓰기도 하며 그와 함께 걸었다. 미도리마가 잠에서 깨기 전까지 그들은 꿈속에서 어딘지 모를 곳을 그렇게 나란히 걸었다. 미도리마는 얼굴을 세수하듯 한 번 힘주어 문지르고 샤워기를 잠갔다.
미도리마는 목도리를 풀고 외투를 벗어 옷걸이에 걸어놓고 출근길에 사 온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히터를 틀어놓아 조금씩 따뜻해져가는 실내 공기를 느끼며 의자에 앉자 겨울 아침의 적막이 진료실을 메웠다. 진료 시작 시각까지는 아직 시간이 한참 남아있었다. 미도리마는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잠시 눈을 감았다.
미도리마는 며칠째 비슷한 꿈을 꾸고 있었다. 꿈 내용은 특별하달 것은 없었지만 또 매번 닮아있었다. 꿈속의 미도리마는 언제나 어디인지 알 수 없는, 그러나 낯익은 공간 속에 있었다. 등장하는 사람은 미도리마를 제외하면 한 명 뿐이었고, 또 언제나 같은 사람이었다.
미도리마는 몇 년째 만나지 못한 고등학교 동창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와 언제까지 연락을 했으며 언제 끊겼는지,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언제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벌써 한참을 잊고 지내 친구라고 부르기엔 약간 어색한 관계가 되어버린 사람이었다.
미도리마는 매일 밤 꿈에서 타카오 카즈나리를 만나고 있었다.
꿈속에서 타카오는 미도리마에게 늘 무어라고 말을 걸었고 미도리마는 그에 대답할 때도 있었고 가끔은 그러지 않을 때도 있었다. 미도리마는 잠에서 깨고 나면 자세한 대화 내용은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꿈속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내다 일어난 것은 알았다. 꿈속의 미도리마는 한 번도 자신이 꿈을 꾸고 있음을 자각하지 못했다. 그는 편안하다고 느끼는 공간 속에서 타카오와 대화를 나누거나, 함께 놀거나, 혹은 그저 아무 말 없이 시간을 보내다 잠에서 깨고는 했다.
사실 미도리마는 왜 자신이 계속 타카오의 꿈을 꾸는지 알 수 없었다. 그들은 그들이 고등학생이었던 시절 자의든 타의든 늘 붙어 다니던 사이였으나 학교를 졸업한 이후로는 자의든 타의든 거의 만나지 않았으며, 서로의 얼굴을 본 지 아주 오래 되었고, 최근에 그를 떠올릴 만한 어떤 사건이나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도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났으며 사실상 미도리마는 고등학생 시절에 대해 자세한 일들은 제대로 기억하지도 못했다. 어찌되었든 미도리마는 학교를 졸업하고 나와 직업을 갖게 되었으며 그에게 고등학생 시절은 즐거웠던 옛 추억으로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그렇듯 미도리마에게 있어서도 그 시절은 좋은 기억들이 가득한 낡고 소중한 앨범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또 그 시간들은 책장 정리를 하기 전까지는 뽀얀 먼지를 얹고 있는 대개의 앨범들처럼 방치되어 있고는 하는 것이었다. 미도리마는 한동안 타카오와 동창들과 학생시절에 관해 완전히 잊고 살았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말하자면, 그 꿈을 꾸기 시작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미도리마는 타카오와 함께 어딘가를 걷고 있었다. 타카오는 십여 년 전 모습 그대로였고 익숙한 교복을 걸치고 있었다. 타카오는 미도리마에게 쉼 없이 무언가를 떠들어대고 있었는데 대개 미도리마가 듣기에 시시껄렁한 내용들이었다. 미도리마가 이름만 들어본 밴드가 새 앨범을 냈는지 어쨌는지, 미야지가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 멤버가 인터뷰에서 무슨 소리를 했는지 같은 것들에 미도리마는 전혀 흥미가 없었으나 그는 그저 타카오가 떠드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바닥에 깔린 보도블록 옆으로 작은 수풀이 우거진 길은 앞뒤가 온통 뿌옇게 흐려 그곳이 어디인지 전혀 알아볼 수 없었지만, 미도리마는 그 장소를 아주 익숙하고 낯익다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드문드문 이끼가 낀 길은 걷고 걸어도 끝나지 않았고 미도리마는 타카오의 목소리를 들으며 말없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미도리마가 눈을 떴다. 싸늘한 겨울 공기가 코끝을 맴돌았다. 밤사이 기온이 더 내려간 모양인지 어제 아침보다 추워졌다고 생각한 미도리마는 코끝을 문지르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오늘 역시 그가 나오는 꿈을 꾸었다. 모든 것이 뿌옇게만 떠오르던 어제의 꿈과 달리 오늘의 꿈은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 미도리마는 어렴풋이나마 떠올릴 수 있었지만, 그러나 별다른 내용이랄 것도 없었다. 고등학생인 타카오와 미도리마가 재잘거리며 어디인지 모를 길을 걸었을 뿐이었다.
문득 미도리마는 그 길이 낯이 익다는 생각을 했으나, 여전히 어느 곳인지 떠올릴 수는 없었다. 좁고 축축하고 나무가 많은 길이었으나 기억나는 것은 그뿐이었다. 그러나 꿈속의 길은 잠에서 깬 미도리마에게도 여전히 어딘지 낯익게 느껴졌다. 미도리마는 씻는 내내 그 길에 대해 생각해 보았으나 결론에 다다르지는 못했다. 미도리마는 조금 더 두꺼운 겨울 코트를 옷장에서 꺼내 입고 머플러를 단단히 둘렀다. 흘러가는 생각이 대개 그렇듯 짧게 머리를 맴돌던 그 생각도 바쁜 출근길 속에 흘러 없어졌다.
‘신쨩! 여기야!’
타카오가 큰 소리로 미도리마를 부르며 팔을 붕붕 휘저었다. 미도리마는 손에 들고 있던 음료 캔 중 하나를 타카오에게 던져주었다. 가볍게 받아드는 손 사이로 그가 좋아하는 탄산음료 상표가 보였다. 미도리마는 즐겨 마시는 단팥죽 캔을 따서 한 모금 마시며 타카오 옆에 앉았다.
그들은 음료 캔을 손에 쥐고 벤치에 나란히 앉은 채 아무런 말이 없었다. 미도리마는 딱딱한 벤치 등받이에 살짝 기대 말없이 허공만 바라보았고 타카오는 손에 든 캔을 살살 돌리거나 손톱 끝으로 표면을 톡톡 두드려 소리를 내거나 했다.
‘졸리다.’
허공을 향해 다리를 쭉 뻗어 몇 번 휘저은 타카오가 말했다. 미도리마는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을 보다 담쟁이덩굴이 올라가는 빨간 벽돌담으로 시선을 옮겼다. 발치에는 모래먼지 사이로 잡초가 드문드문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왁자지껄 떠드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멀리에서 들렸다. 모여서 축구라도 하는지 이따금 와아 하는 탄성과 고함이 터져 나왔다.
‘기운도 좋아. 덥지도 않나.’
‘우리도 잠시 후면 부실에 가야 한다는 것이다.’
‘거야 알지. 그렇지만 덥잖아.’
‘네가 그렇게 더위를 타는 줄은 몰랐는데.’
‘네― 타카오 카즈나리 군도 인간이라서요. 유감스럽게도.’
타카오가 손부채질을 했다. 아, 더워, 더워 죽겠다. 투덜거리며 과장스런 몸짓으로 부산을 떨던 타카오가 곧 지쳤는지 축 늘어져 말없이 손에 든 탄산음료만 들이켰다.
‘있지, 신쨩.’
잠시 멀리서 사람들 떠드는 소리만 듣고 있던 중 타카오가 말했다. 금세 비워버린 탄산음료 캔을 손 안에서 빙글빙글 돌리다가 다시 입가에 가져다 댄 타카오는 음료수가 더는 한 방울도 나오지 않자 한숨을 푹 내쉬고는 팔을 늘어뜨렸다.
‘우리 주말에 어디 놀러 안 갈래?’
‘주말?’
‘거 뭐냐……그런 거 있잖아. 영화나 게임이나……. 아무튼 빵빵한 에어컨 아래서 시원하게 즐길 수 있는 거. 아, 수영장도 좋네.’
‘도서관이라던가?’
‘아니, 아니, 아니, 아니. 그런 데 말고!’
‘농담이라는 것이다. 그보다 주말에는 주말연습이 있어. 너도 알지 않느냐는 것이야.’
‘아―암요. 알고말고요. 연습. 그래 연습 좋지…….’
타카오가 입을 댓 발 내밀고 꿍얼거렸다. 타카오는 잠시 축 늘어져 있다가 팔다리를 쭉 뻗고 기지개를 켜더니 나른한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신쨩이랑 놀러 가고 싶다.’
(생략)
통판을 원하시는 분들은ㅍㅍㅍ 통판원하시면 덧글 달아주세요 로 책값 2500원x원하시는 권수 + 배송료 2700원을 입금하신 뒤 (=한 권 5200원입니다. 배보다 배꼽이 커서 죄송해요ㅠㅠ) 이 글에 비밀댓글로
성함 / 원하시는 권수 / 주소 / 우편번호 / 연락처
이 다섯 가지를 적어 댓글 남겨주시면 됩니다. 우편번호 반드시 적어주시고 번지수랑 헷갈리지 않게 써주세요 ;-; 간혹 주소를 잘못 적어 보낼까 애를 먹습니다
배송은 금요일 혹은 주말에 일괄적으로 이루어집니다. 문의는 댓글이나 트위터 @R_af_dp 로 멘션주시면 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