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로코의 농구
타카오x미도리마
진단메이커 발 키워드 연성입니다.
키워드: 볕 좋은 날, 인산인해 속, 하얀 불꽃, 일상
너를 볼 때마다 가끔씩 생각해 오던 일이 있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어느 봄 날, 우리는 꽃 구경을 가기로 했었다. 그런 것보단 새 학기 준비를 하고 싶다는 너를 어르고 달래 겨우 주말에 약속을 잡았을 때, 또 정작 만나서는 게자리 운세가 좋다는 핑계를 대며 은근히 즐거워하는 너를 볼 때 내가 얼마나 기뻤는지 너는 아마 몰랐을 것이다. 나는 그런 기쁨을 표현하는 대신 널 보고 웃어주곤 했다. 그러고 나면 아닌 척 쑥스러움에 시선을 피하며 안경을 고쳐 쓰는 널 보는 게 나는 그렇게 좋았던 것 같다.
꽃놀이 하면 유카타라며 너에게 유카타 입을 것을 요구하던 나였지만, 사실은 그저 너의 유카타 입은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뿐이었다는 사실은 어쩌면 너도 이미 눈치채고 있었을 지 모른다. 과연 요구한 보람은 있었다. 큰 키에 걸친 단정한 유카타는 제법 태가 났다. 신쨩, 이렇게 해놓고 보면 새삼스레 참 멋있단 말야, 하고 농담처럼 칭찬을 건네면 너는 얼굴을 온통 시뻘겋게 물들이고 쓸 데 없는 소리는 하지 말라고 소리쳤었다. 그러나 너의 그 얼굴을 본 것 만으로 쓸 데 없는 소린 아니었다고 생각한 것이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어서 출발하자며 타박하는 너의 말에 네에, 네에 하고 대답하며 길을 걸었던 그 날은 참 볕이 좋았다. 언제나 끌고 다니던 리어카도 두고 둘이 나란히 걸으면서 나는 너의 손을 잡는 상상을 했다. 걸어가면 갈수록 벚꽃이 흩날리는 이 길을 너와 함께 손을 잡고 걸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 그것은 상상만으로 가슴이 벅차 오르는 일이어서, 나는 마치 이미 그렇게 해 본 듯이 마음이 들뜨곤 했다.
옆을 돌아보면 보이는 너의 옆얼굴은 벚나무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활짝 핀 벚꽃을 바라보는 너의 표정은 그 광경에 도취된 듯해서, 그런 너를 바라보는 나 또한 너에게 도취되는 기분이 되어 길을 걸으며 그렇게 너를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고 있었다.
말없이 걷다 보니 목표했던 공원에 다다라있었다. 그제야 정신이 든 우리는 서로 멋쩍어하며 헛기침이며 딴소리를 해가며 분위기를 바꾸기에 급급해했다. 나는 요리에 자신이 없다던 너 대신 챙겨온 도시락을 꺼내고, 너는 물병이며 돗자리를 꺼내 주섬주섬 나무 밑에 자리를 만들었다. 나란히 앉아 꽃이 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꽤 운치가 있었다. 공원은 이미 꽃놀이 나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뤄 풍경을 감상할만한 조용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그건 그것대로 괜히 신이 나는 분위기였었다. 준비성 좋게 보온병 두 개에 뜨거운 우롱차를 끓여 온 너를 보며 한바탕 시원하게 웃은 것이 기억이 난다. 너와 사이 좋게 도시락을 나눠 먹고 나서 차를 마실 때, 보온병 뚜껑에 따라 마시는 우롱차 주제에 다도 하듯이 꿇어앉아 올바른 자세로 잔을 쥐고 천천히 차를 들이키는 너의 살짝 내리 감긴 눈, 그 속눈썹이, 나는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하늘에는 눈처럼 흩날리는 벚꽃 잎, 그 사이사이로 비춰 드는 온화한 햇볕, 뒤로는 저마다 봄을 즐기는 사람들, 그리고 그 가운데 앉은 너, 그 단정한 얼굴, 감긴 눈, 길다란 속눈썹, 곱게 흐트러진 머리카락, 살짝 상기된 뺨, 차를 마시는, 살짝 미소 짓는 그 입술까지 내 머릿속에는 한 폭의 수채화처럼, 한 장의 사진처럼 선명하게, 또 부드럽게 각인되어 있다.
해가 지고 나서는 불꽃놀이를 한다고 했었다. 사람 많은 곳이 부담스러웠던 너와, 또 너와 단 둘이 있고 싶었던 나는 그 인산인해 속에서 조용한 곳을 찾아 다녔다. 결국 도착한 곳은 어느 조용한 놀이터였다. 너와 나는 둘이서 캔음료 한 개씩을 뽑아 들고 벤치에 앉아 불꽃놀이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우리 둘 사이엔 또 대화가 없어졌다. 그런 분위기에서 으레 그렇듯이 무거운 이야기들, 이를테면 우리의 장래라던가, 또는 학업이나 부활동에서의 고민이라던가, 가정사라던가 하는 것들을 꺼낼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왠지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너도 마찬가지였을까, 거기까지는 나는 알 방법이 없다. 어찌 되었든 우리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앉아있었고, 나는 차가운 캔 표면을 손으로 쓸며 너에 대해 생각했다. 또 오늘 함께 보낸 시간과, 내가 너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억들, 또 감정들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너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떠올릴 즈음에,
펑,
하고 불꽃이 터졌다. 새하얀 불꽃이 사방으로 퍼져 까만 하늘을 수놓다 이내 사라지고, 연이어 색색의 불꽃이 쏘아 올려졌다. 그 터지는 불꽃을 보며 나는 내 안에서도 무언가가 터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이를테면 오래 고여있던 것들, 감정들, 이를테면 너를 향한, 흘러 넘치고 싶어하던 그 감정들이 일시에 터져나가 화려하게 빛나고, 또 일시에 꺼져 내 눈 앞을 캄캄하게 만들고, 또 오래도록 여운이 남아 온 몸으로 퍼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무의식 중에 옆에 앉아있던 너를 돌아보았다. 너는 멍한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엔 아직 불꽃이 수놓아지고 있었다. 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너도 나와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을까. 이제 와서는 내겐 알 도리가 없는 일이다.
너를 볼 때마다 가끔씩 생각해 오던 일이 있었다. 네가 나의 일상이 되어주기를 바랐다. 그냥 막연하게, 그렇게 생각해 오던 일이 있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은 조용했다. 옆에서 걷는 너를 보고 있자니 앞을 보던 네가 눈을 맞춰 왔다. 의아해하는 눈빛만으로도 네가 하고 싶은 말이 전해져 오는 느낌이라, 어쩐지 웃음이 났다. 나는 너의 손을 잡는 대신 너의 가까이에서 걸었다. 간혹 스치는 팔이나 손으로 너의 온기가 전해져 오는 일은 내게는 참 설레는 사건이었다. 그 때 생각했다. 아, 너는 이미 내 일상 속에 있었다.
나는 낡은 앨범 속 빛 바랜 사진을 꺼내 보듯 그렇게 가끔씩 너를 생각한다. 아직도 선명히 기억나는 너의 모습과, 나의 감정과, 지금과는 달랐던 그 때의 나의 마음과, 생각들과, 우리가 함께 보냈던 시간들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생각들을 할 때마다 너는 나의 일상 속으로 들어온다. 기억 속의 너는 여전히 솔직하지 못하고, 짐짓 엄하게 굴어가며 나를 다그치다가도 날 염려하는 것임을 미처 숨기지 못하고, 또 가끔은 자신만만하게 웃어 보인다. 지금 나의 일상에 너는 없지만, 그 때의 내 일상에는 언제나 네가 있었다. 그리고 또 나는 확신한다. 그 때의 너의 일상 속에도 내가 있었으리라는 것을. 우리가 같은 시간을 보냈듯이, 서로의 일상 안에 존재했으리라는 것을 말이다.
지금 접힌글이 글씨가 너무 연해서 일단 안 접고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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